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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녀의 직업병? 숨병의 과학적 정체

by financeinf0 2025. 3. 27.

해녀 사진입니다.
해녀 사진입니다.

 

숨병은 제주 해녀 사회에서 전해 내려온 전통 질병 개념입니다. 최근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에도 등장하며 관심이 높아진 숨병의 증상과 의학적 해석을 중심으로 다뤄봅니다.

숨병이란 무엇인가: 해녀 사회에서의 전통적 질병 개념

‘숨병’은 제주 해녀 사회에서 전해 내려오는 독특한 질병 개념이다. 해녀들 사이에서는 갑작스럽게 숨이 막히고 가슴이 조여오며, 심하면 실신이나 돌연사에 이르기도 하는 증상을 일컬어 숨병이라 부른다. 단순히 피로에 의한 과호흡이 아니라, 해녀들 사이에서는 “숨이 끊기는 듯한 느낌”으로 표현되며, 이를 극도로 두려운 질병으로 인식해 왔다.

이러한 개념은 과거 의학적 진단체계가 부족했던 시절에 생존 현장의 경험을 토대로 형성된 일종의 민속 질환으로, 정신적 요인과 신체적 요인이 뒤섞인 복합적 증상군으로 해석된다. 해녀 공동체는 숨병을 단순한 건강 문제 이상으로 인식하며, 이를 예방하기 위해 전통적으로는 치성이나 굿 같은 방식도 병행했다.

최근 tvN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에도 숨병이 등장하며 다시금 대중의 관심을 끌고 있다. 드라마 속에서 등장인물의 어머니가 숨병 증상으로 고통을 받는 장면은, 이 개념이 단지 전통적인 전설이 아니라 실제로 지역사회에서 깊은 현실성을 가진 문제라는 점을 보여준다. 이러한 묘사는 시청자들에게 "숨병이 도대체 뭘까?"라는 궁금증을 유발하며, 의료적 접근의 필요성 또한 환기시키고 있다.

숨병의 의학적 해석: 실체 없는 병이 아닌 복합 질환

숨병의 증상은 현대의학으로도 설명 가능한 여러 질환과 유사하다. 가장 먼저 고려되는 것은 감압병(Decompression Sickness)이다. 감압병은 잠수 후 급격히 수면 위로 올라올 때 체내 질소가 기화되어 혈관을 막으며 다양한 신경학적·심폐 증상을 유발하는 질환이다. 어지럼증, 호흡곤란, 근육통, 실신 등이 주요 증상으로, 해녀의 작업 환경과 정확히 일치한다.

이외에도 반복적인 무호흡 잠수로 인해 폐 기능이 손상되며 발생할 수 있는 만성 폐쇄성 폐질환(COPD)이나 폐기종, 심한 경우 급성 호흡곤란 증후군(ARDS)도 숨병과 유사한 증상을 보일 수 있다. 특히 나이가 많은 해녀일수록 폐 조직의 탄력이 떨어지고, 산소 교환 능력이 약해지며 숨 가쁨, 기침, 흉부 통증을 호소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숨병에 심리적 요인이 병행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해녀는 극도의 집중과 긴장 속에서 작업하며, 심리적으로 위축되거나 불안감이 클 경우 심인성 호흡곤란이나 공황장애 초기 증상이 겹쳐질 수 있다. 이는 실제로 과호흡, 흉부 압박감, 어지럼증을 동반할 수 있으며, 의료 현장에서는 이런 증상을 종종 ‘기능적 호흡 장애’ 또는 ‘신체화 증상’으로 분류한다.

따라서 숨병은 단일 질환이 아니라, 신체적 손상과 심리적 스트레스가 동시에 작용하는 복합 질환 또는 증상군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숨병은 사라진 개념이 아니라 재해석이 필요한 전통 질환

오늘날에는 의료기술의 발달로 인해 해녀들의 건강 상태를 보다 정밀하게 분석할 수 있게 되었다. 실제로 제주도 내 일부 병원과 연구기관에서는 해녀 대상의 감압병 예방 프로그램, 폐기능 검사, 정기 건강검진 등을 통해 숨병의 실체를 추적하고 있다. 그 결과, 숨병으로 인식되던 증상 중 상당수가 실제 질환으로 진단 가능하다는 사실도 확인되었다.

숨병이라는 개념은 단지 과거의 전설이 아니다. 그 안에는 위험한 노동환경, 반복적 육체피로, 고령화, 심리적 억압 등 다양한 리스크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이는 오늘날에도 유효한 건강 위협 요인이다. 과거엔 이를 숨병이라고 불렀지만, 지금은 보다 구체적인 진단명으로 분류하고 체계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단순히 전통문화로 치부하지 않고, 숨병을 하나의 직업성 질환에 가까운 개념으로 재해석하는 시도는 해녀들의 건강권 보호를 위한 첫걸음이라 할 수 있다.

결론: 숨병은 해녀 삶의 상징이자 의학적 과제로 남아 있다

숨병은 과거 제주 해녀들의 삶에서 비롯된 전통 질환 개념이지만, 현대의학으로 충분히 접근 가능한 복합 증후군이다. 감압병, 호흡기 질환, 심리적 불안 등과 연관된 실질적 증상으로 해석되며, 해녀의 생존 환경과 직결된 건강 문제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에서 숨병이 묘사된 것처럼, 대중문화 속 등장은 이 개념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높이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문화적 접근을 넘어, 실제 해녀들의 건강을 어떻게 보호하고 지원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료적·제도적 고민이다.

숨병은 여전히 존재한다. 단지 이름이 바뀌고, 해석 방식이 달라졌을 뿐이다.